걸핏하면 나오는 "낀 세대"라 억울하다는 이 타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간단히 네이버의 힘을 빌려서 살펴보면 해방전후세대인 성대 정진수 교수가 1985년 6월 13일 동아일보에 쓴 컬럼에서 처음 "낀 샌드위치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내용도 동일하다. 윗 세대의 뒤치닥꺼리를 하면서 아랫 세대가 치받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억울한 세대라는 것. 이때 40대들이다.
그리고 1993년 8월 31일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30대가 감각적인 신세대와 그렇지 못한 옛세대 사이에 낀 어정쩡한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활자와 비디오 사이에 끼었다는 것. 이때 30대니까 이른바 386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1995년 4월 1일 동아일보 기사에도 30대를 "20대와 40대사이에 낀 샌드위치세대"라고 말한다.
1996년 3월 7일 동아일보에서는 40대 넣어서 "신세대와구세대의 중간에 낀 일명샌드위치세대인 30,40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1996년 12월 18일, "낀 세대"라는 말이 제목으로 등장했다. "30대는「낀세대」"
1997년 1월 4일 조선일보에는 "어정쩡하게 낀「샌드위치세대」"라고 30대를 말한다.
1997년 6월 14일 동아일보에는 "겉으로는 합리적인 척 하지만 권위주의의 틀을 못벗어났고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헉헉대는 40~50대, 이기적이고 타인과 현실정치에는무관심한 신세대 사이에 낀 세대입니다."라고 30대를 낀 세대로 정의한다.
1998년 9월 29일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PC통신 모임 확산'낀 세대'30·40대 그들만의 사랑방"이다. "낀 세대"가 등장한다. 연도가 90년대말이 되니까 386을 3~40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1999년 4월 9일 경향신문 기사에는 "30·40대는 댄스·발라드를 듣는 10대와 트로트를 듣는 장년층 사이에「낀 세대」"라고 나오고,
1999년 10월 23일 매일경제 기사에는 "정치와 개인 사이에, 개발과환경 사이에, 기업과 가정 사이에,그리고 장년문화와 청년문화 사이에 낀 세대로 386"이라고 386세대를 낀 세대로 규정하면서 총체적인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 사이에 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40대가 된 386을 계속 "낀 세대"로 부르고 있다.
2004년 6월 23일 동아일보 김병익 컬럼에서는 386 세대를 불행한 세대라고 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자.
우리의 세대사(世代史)로 보아 2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 못지않게 불행한 세대가 아마도 386세대일 것이다. 이들은 60년대에 태어나 절대 빈곤과 급격한 사회 변화를, 그것도 일인 독재체제 하에서 유년기부터 겪어야 했고, 철이 들 소년시절에는 유신체제의 반공교육을 받았으며, 성년기에는 이념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실천운동으로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수배당하거나 감옥살이로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젊은 날의 낭만을 즐길 수도 없었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 또래인 20년대 세대와 비슷하게, 역사의 무게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사사로운 욕망을 희생해야 했고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상대로 고통스럽게 싸워야 했다.
2004년 한겨레21에 79년생 작가 권리가 자기들 세대를 "낀 세대"라고 불렀다. "그의 세대는 전공투 세대와 너무 멀리 떨어진 일본의 20대처럼 ‘방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386세대의 이상에 동의할 수도 없는 ‘낀 세대’다. 참여도 방관도 하지 않는 세대." - 처음 386 이후 세대에서 낀 세대를 주장한 것인데 아직 20대라서 이후에 이런 주장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2004년 10월 8일 내일신문에선 386세대가 낀 세대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2004년 12월 1일 내일신문은 민청학련과 386 사이의 40대를 "낀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5년 1월 11일 경향신문은 386세대에 밀려 그 뒤편에 서있는 ‘475세대’가 "낀 세대"라고 말했다. 2005년 1월 21일 내일신문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세대로 이들을 가리켰다. 억울한 세대라는 이야기다.
2005년 2월 28일 노컷뉴스에는 50대가 낀 세대라고 나온다. 억울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우리 세대를 낀 세대라고 생각한다. 효를 하는 마지막 세대면서 효를 못 받는 첫 번째 세대, 곗돈을 열심히 부어 다음달 정도에 타려고 했는데, 요번 달에 깨진 세대"
2005년 11월 1일 동아일보를 보면 베이붐 세대(55~63)를 "낀 세대"라고 한다. 역시 기조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썼다. "신현암(申鉉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세대는 사회 제도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열매’를 얻진 못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같은 날 문화일보는 386세대를 "위기의 낀 세대"라 불렀다. 이제 "낀 세대" 전성 시대이다.
2005년 12월 31일 동아일보에는 58년 개띠에 대해서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낀 세대’였어요. 민주화운동사에서도 유신시대 운동권 세대와 386세대 사이의 익명의 존재이고, 문화적으로도 1970년대 포크 세대와 1980년대 발라드 세대의 중간에 있잖아요."
같은 날 문화일보 역시 "58년 개띠 찬밥신세 '낀 세대'서 사회의 주류로"라는 기사를 실었다.
2006년 1월 2일 한국경제는 386 아래 세대를 2635세대라고 하면서 "낀 세대"라고 이야기했다.
2006년 1월 3일 동아일보는 "전문가들은 ‘낀 세대’를 1955∼1970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판 베이비붐 세대로 규정한다. 흔히 ‘475’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이라고 이야기하고 이들이 위아래 눈칫밥을 먹는다는 억울함에 대해서 기사를 썼다.
대충 이 이후에도 뭔가 힘들고 억울해보이는 사회적 현상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세대를 습관적으로 "낀 세대"라고 부르고 억울하다는 논조의 글들을 써온 것 같다.
이상 문득 꽂힌 뻘짓 조사 끝.
간단히 네이버의 힘을 빌려서 살펴보면 해방전후세대인 성대 정진수 교수가 1985년 6월 13일 동아일보에 쓴 컬럼에서 처음 "낀 샌드위치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내용도 동일하다. 윗 세대의 뒤치닥꺼리를 하면서 아랫 세대가 치받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억울한 세대라는 것. 이때 40대들이다.
그리고 1993년 8월 31일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30대가 감각적인 신세대와 그렇지 못한 옛세대 사이에 낀 어정쩡한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활자와 비디오 사이에 끼었다는 것. 이때 30대니까 이른바 386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1995년 4월 1일 동아일보 기사에도 30대를 "20대와 40대사이에 낀 샌드위치세대"라고 말한다.
1996년 3월 7일 동아일보에서는 40대 넣어서 "신세대와구세대의 중간에 낀 일명샌드위치세대인 30,40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1996년 12월 18일, "낀 세대"라는 말이 제목으로 등장했다. "30대는「낀세대」"
1997년 1월 4일 조선일보에는 "어정쩡하게 낀「샌드위치세대」"라고 30대를 말한다.
1997년 6월 14일 동아일보에는 "겉으로는 합리적인 척 하지만 권위주의의 틀을 못벗어났고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헉헉대는 40~50대, 이기적이고 타인과 현실정치에는무관심한 신세대 사이에 낀 세대입니다."라고 30대를 낀 세대로 정의한다.
1998년 9월 29일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PC통신 모임 확산'낀 세대'30·40대 그들만의 사랑방"이다. "낀 세대"가 등장한다. 연도가 90년대말이 되니까 386을 3~40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1999년 4월 9일 경향신문 기사에는 "30·40대는 댄스·발라드를 듣는 10대와 트로트를 듣는 장년층 사이에「낀 세대」"라고 나오고,
1999년 10월 23일 매일경제 기사에는 "정치와 개인 사이에, 개발과환경 사이에, 기업과 가정 사이에,그리고 장년문화와 청년문화 사이에 낀 세대로 386"이라고 386세대를 낀 세대로 규정하면서 총체적인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 사이에 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40대가 된 386을 계속 "낀 세대"로 부르고 있다.
2004년 6월 23일 동아일보 김병익 컬럼에서는 386 세대를 불행한 세대라고 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자.
우리의 세대사(世代史)로 보아 2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 못지않게 불행한 세대가 아마도 386세대일 것이다. 이들은 60년대에 태어나 절대 빈곤과 급격한 사회 변화를, 그것도 일인 독재체제 하에서 유년기부터 겪어야 했고, 철이 들 소년시절에는 유신체제의 반공교육을 받았으며, 성년기에는 이념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실천운동으로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수배당하거나 감옥살이로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젊은 날의 낭만을 즐길 수도 없었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 또래인 20년대 세대와 비슷하게, 역사의 무게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사사로운 욕망을 희생해야 했고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상대로 고통스럽게 싸워야 했다.
2004년 한겨레21에 79년생 작가 권리가 자기들 세대를 "낀 세대"라고 불렀다. "그의 세대는 전공투 세대와 너무 멀리 떨어진 일본의 20대처럼 ‘방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386세대의 이상에 동의할 수도 없는 ‘낀 세대’다. 참여도 방관도 하지 않는 세대." - 처음 386 이후 세대에서 낀 세대를 주장한 것인데 아직 20대라서 이후에 이런 주장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2004년 10월 8일 내일신문에선 386세대가 낀 세대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했다.
2004년 12월 1일 내일신문은 민청학련과 386 사이의 40대를 "낀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5년 1월 11일 경향신문은 386세대에 밀려 그 뒤편에 서있는 ‘475세대’가 "낀 세대"라고 말했다. 2005년 1월 21일 내일신문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세대로 이들을 가리켰다. 억울한 세대라는 이야기다.
2005년 2월 28일 노컷뉴스에는 50대가 낀 세대라고 나온다. 억울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우리 세대를 낀 세대라고 생각한다. 효를 하는 마지막 세대면서 효를 못 받는 첫 번째 세대, 곗돈을 열심히 부어 다음달 정도에 타려고 했는데, 요번 달에 깨진 세대"
2005년 11월 1일 동아일보를 보면 베이붐 세대(55~63)를 "낀 세대"라고 한다. 역시 기조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썼다. "신현암(申鉉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세대는 사회 제도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열매’를 얻진 못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같은 날 문화일보는 386세대를 "위기의 낀 세대"라 불렀다. 이제 "낀 세대" 전성 시대이다.
2005년 12월 31일 동아일보에는 58년 개띠에 대해서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낀 세대’였어요. 민주화운동사에서도 유신시대 운동권 세대와 386세대 사이의 익명의 존재이고, 문화적으로도 1970년대 포크 세대와 1980년대 발라드 세대의 중간에 있잖아요."
같은 날 문화일보 역시 "58년 개띠 찬밥신세 '낀 세대'서 사회의 주류로"라는 기사를 실었다.
2006년 1월 2일 한국경제는 386 아래 세대를 2635세대라고 하면서 "낀 세대"라고 이야기했다.
2006년 1월 3일 동아일보는 "전문가들은 ‘낀 세대’를 1955∼1970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판 베이비붐 세대로 규정한다. 흔히 ‘475’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이라고 이야기하고 이들이 위아래 눈칫밥을 먹는다는 억울함에 대해서 기사를 썼다.
대충 이 이후에도 뭔가 힘들고 억울해보이는 사회적 현상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세대를 습관적으로 "낀 세대"라고 부르고 억울하다는 논조의 글들을 써온 것 같다.
이상 문득 꽂힌 뻘짓 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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