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 "전후삼한고"에서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지나의 信史(신사)를 찾으려면 사마천에게 제일지第一指를 굴屈할 터이나, 그러나 사마천은 충실하게 원방 외국인 이집트 바빌론의 역사를 채록하던 희랍의 헤로도투스 같은 사가가 아니요, 즉 공자 춘추의 존화양이尊華攘夷, 상내약외詳內略外, 위국휘치爲國諱恥 등의 주의를 견수하던 완유頑儒(완고한 유학자)라.
공자가 지은 《춘추》에 저런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데, 이 말들은 어떤 내력을 지닌 것일까?
존화양이尊華攘夷는 춘추시대 패자의 원칙이었던 존왕양이尊王攘夷(주나라 왕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무찌른다)를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상내약외詳內略外란 안의 일은 상세히 적고 밖의 일은 간략하게 적는다는 것으로 역사책을 쓰는데 있어서 딱히 문제가 될 내용은 아니다. 청나라 때 쓴 《春秋要指》라는 책에서 《춘추》를 가리켜 "詳內略外,詳尊略卑,詳重略輕,詳近略遠,詳大略小,詳變略常,詳正略否。"라고 말한 것이 검색된다. (길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자세히 쓰고 안 중요한 건 간단하게 쓰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도 나온다.
讀《魏書》《通典》. 亦載其事. 然略而未詳. 豈"詳內略外"之意耶.
《위서》《통전》을 읽어보니, 또한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간략하고 상세하지 않으니, 이것은 (자국) 내의 사실은 상세하고 외국은 간략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헤 수치를 감춤)는 어디서 온 말일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8년 기사의 김부식 사론.
마침내 (당태종이) 스스로 빠져나가기는 했으나, 위태로움이 그와 같았는데도 《신당서》, 《구당서》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 어찌 자기 나라의 체면을 위하여 이 사실을 숨긴 것이 아니겠는가(豈非爲國諱之者也).
그리고 《춘추곡량전》에 이런 말이 있다.
爲尊者諱恥, 爲賢者諱過, 爲親者諱疾.
높은 사람을 위해 수치를 숨기고,
어진 사람을 위해 잘못을 숨기고,
친한 사람을 위해 괴로운 것을 숨긴다. (노성공 상편 9년)
"爲國諱之"와 "尊者諱恥"가 합해져서 "爲國諱恥"가 탄생한 것 같다.
신채호가 이 말을 한 이래, 유사역사가들은 중국사를 폄하하기 위해서 늘 이 말을 애용한다.
더불어 따라나오는 "矜華夏而陋夷狄"(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낮춘다)이라는 말의 내력은 또 복잡하니, 다음 기회에...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