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의 원균 *..역........사..*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때 서인이 정권을 잡은 동인&북인의 시각으로 작성된 선조실록의 일부를 수정한 실록이다.

이순신은 동인이었고, 원균은 서인이었다. 그러니 이 수정실록은 원균에게 유리할 것 같은가? 천만에도 서인도 원균을 실드치지 못했다. 그만큼 원균은 무능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독해를 하면 원균에게 유리한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한번 보자.

수정실록 선조 25년 5월 1일.

均使雲龍、致績爲先鋒, 到玉浦遇倭船三十隻, 進擊大破之, 餘賊登陸而走, 盡焚其船而還。 復戰于鷺梁津, 燒賊船十三隻, 賊皆溺死。
언양 현감(彦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수로(水路)의 향도가 되기를 자청하여 앞장서서 마침내 거제 앞 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운룡과 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하였다. 이에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노량진(鷺梁津)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이 대목만 떼어서 보면 원균은 어마무시한 장군이다. 왜냐? 원균에게는 배가 딸랑 판옥선 3척에 협선 2척 뿐이었다. 원균이 배 3척으로 10대 1의 싸움을 하는 동안 판옥선만도 24척을 거느리고 출전한 이순신은 대체 뭘했단 말인가?

그런데 저 글 바로 뒤에 나오는 걸 한 번 보자.

是戰也, 舜臣左肩中丸, 猶終日督戰。 戰罷, 始使人以刀尖挑出, 軍中始知之。
이 전투에서 순신은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는데도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하니 군중(軍中)에서는 그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원균 혼자 북치고 장구친 것 같았는데, 이순신은 종일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다. 싸우지도 않았다면 총탄에 왜 맞고 무슨 전투 독려를 할 수 있겠는가?

이 전투에 대해서는 일본측 기록도 남아있다. 자기네 배 50여 척이 조선 수군 7~80척과 만나 배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쓴 것이다. 이충무공전서에 남은 장계에는 이때 전투 상황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원균의 경상우도 수군의 활약도 적혀 있다.

경상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왜 대선 5척을 격파했다고.

이순신의 장계를 보면 이순신은 총통으로 적선을 격파, 활을 쏘아 적군을 사살, 불화살을 날려 배를 태워버리는 전법을 썼는데, 이것은 조선 수군의 일관된 전략이 되었다.

적선 13척을 불태운 사실도 장계에 잘 나타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해당 기록에는 원균이 달아날 곳만 찾았는데, 옥포만호 이운룡이 꾸짖으며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 한 내용이 앞에 실려있다. 이것이 서인도 같은 당파지만 실드칠 수 없었던 원균의 정체다.

덧글

  • rumic71 2022/09/02 22:48 #

  • 초록불 2022/09/03 13:43 #

    ㅎㅎㅎㅎㅎ
  • 무명병사 2022/09/04 18:49 #

    그런데도~ 저딴 인간쓰레기를 그분의 라이벌로 취급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요. 특히 해군.
  • 초록불 2022/09/06 10:01 #

    깝깝합니다.
  • 소하 2022/09/16 18:32 #

    아직도 원균명장설이 돌아다니는가 봅니다
  • 초록불 2022/09/19 00:50 #

    오랜만입니다...^^

    원균 명장설은 이순신이 인기 있는 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 소하 2022/09/19 22:29 #

    네! 반갑습니다. 미디어 발달로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