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1차 추가 : 2007년 9월 19일
2차 추가 : 2007년 9월 21일
3차 추가 : 2007년 9월 24일
4차 추가 및 수정 : 2007년 12월 5일
5차 추가 : 2008년 1월 20일
6차 추가 : 2008년 1월 27일
7차 추가 : 2008년 2월 24일
8차 추가 : 2008년 7월 25일
9차 추가 및 수정 : 2008년 10월 29일
10차 추가 : 2008년 11월 11일
11차 추가 : 2008년 11월 23일
12차 추가 : 2009년 1월 30일
13차 추가 : 2009년 2월 9일
14차 추가 및 수정 : 2009년 7월 20일 - 불의의 사고로 수정 작업
15차 추가 : 2009년 8월 24일
16차 수정 : 2009년 10월 24일
17차 추가 및 수정 : 2010년 2월 14일
18차 수정 : 2010년 7월 25일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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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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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어 능력시험 추천도서 선정 *..자........서..*

제 SF 단편집 <오리지널 맨>이 2021년 KBS 한국어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추천도서(1급)에 뽑혔습니다.

1급에는 총 다섯 권의 책이 선정되었네요.


덕분에 좀 책이 나갔을라나요. 네이버에서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어있습니다. (왜?)

읽어볼만 한 SF 단편들이랍니다. 많이들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생의 고발 *..역........사..*

조선 예종 때 일입니다.

평양의 관비 '대비'(이름 거창합니다)가 사헌부에 고발을 합니다. 누굴?

평양부윤 이덕량과 그의 부하 박종직입니다.

박종직은 이덕량을 믿고 함부로 행세를 했는데 기생 소서시(웃는 서시라는 뜻입니다요)에게 수청을 들라고 했다가 거절 당하자 앙심을 품고 이덕량에게 소서시를 혼내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덕량은 소서시 뿐 아니라 소서시의 어머니 내은이와 남자형제 막달, 막동까지 모두 잡아와 매를 쳤습니다. 그 결과 내은이는 장살되고 소서시, 막달, 막동 모두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관비인 소서시를 다른 권세있는 신하의 종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 와중에 대비도 얽혀들어서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대비가 이 일을 고발하려고 했으나 소장을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고생을 했고, 또 이덕량은 소서시에게 뇌물을 보내서 대비가 고발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막기도 했습니다.

대비는 이 일을 그냥 덮어버리지 못하게 다른 고위 관리들의 기생 수청 관련 범죄 사실을 빼곡히 적어서 같이 제출했습니다. 조정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비의 고발로 죄를 따져보니 이덕량의 죄는 심지어 참수형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덕량은 외척이었어요. 대비(고발자 아니고 왕의 어머니)가 그를 살려달라고 하자 예종은 그 청을 받아들입니다.

이덕량에게 내려진 벌은 고신을 회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고신을 회수하면 벼슬에서 물러나고 다시 기용될 수 없습니다.

불과 몇 달이 안 되어서 이덕량은 성종이 즉위한 뒤에 다시 고신을 돌려받았고 이후 승승장구해서 호조판서까지 지냈습니다.

그 중간에 이덕량 승진을 이 때 일을 들어서 만류한 일이 있었으나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미 선왕 때 판결 내린 일이라 하여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 일의 발단이 된 박종직은 장 1백대에 전가족이 변경으로 이사가야 했습니다. 내은이의 아들딸에게는 1년 간 요역이 면제되었습니다.

고발한 대비에게는 아무 혜택도 없었죠. 대비가 함께 고발한 고위관리들의 비리도 믿을 수 없다고 기각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다 사실이라 해도 이덕량도 죄를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벌을 주겠냐고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내부고발자였던 대비의 삶이 그 후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한데 더 이상 전해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7맛이 나는 7~ *..역........사..*

고려사의 디테일...

판사(判事) 이적(李績)의 처가 승려와 간통을 하였으므로, 승려에게는 장형 107대를, 이적의 처에게는 장형 77대를 때렸다.

100대도 아니고 108번뇌의 108대도 아니고 107대... 그리고 77대...

고려사 읽다가 쇼킹쇼킹!

더 놀라운 것은 이 107대 맞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

저 77대도 규정에 나온다는 사실!

만약 거짓으로 꾸미고 속여 모면하려는 자가 있으면 칼[枷]을 씌워 저자거리에 세우고 장(杖) 77대를 쳐서 섬으로 유배하고 지휘한 사람에게서도 아울러 동(銅)을 징수하라.

7단위를 좋아했던 것일까... 87대, 57대 등도 기록에 나온다. (동=구리를 징수하라고 한 건 중국 법령을 베낀 흔적...)

왜구가 안변(安邊) 함주(咸州)를 노략질하였다. 안변부사(安邊府使) 장백안(張伯顔)이 방비를 소홀히 했으므로 장형[杖] 87대에 처했다.

영사(令史) 구우직(丘友直) 등을 보내 왕숙을 잡아들여 오자 왕은 원 사신과 더불어 행성(行省)에서 그를 국문(鞫問)하고 장(杖) 57대를 때렸다.

물론 형벌 규정에는거의 다 0단위로 나온다. 대체 이 7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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