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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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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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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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대회 잡상 *..역........사..*

제61회 역사학대회에서 <환작(幻作)된 환단고기>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저본다고 와 주신 을파소님, windxellos님, 염승희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 조인성 선생님도 들러주셨습니다.

피켓 들고 노려보러 오시는 할아버지도 기대했는데, 안 오셨네요. ㅎㅎ
저랑 기경량 선생님이랑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인희 선생님에, 조인성 선생님까지 찬조 출연을 했는데 아무도 안 오다니. (먼산)

제가 참여한 한국사학사학회의 이번 주제는 "역사 오남용: ‘역사 만들기’의 세계적 현상"이었습니다.

첫 발표는 김기봉 선생님의 "역사와 진리: 역사 쓰기와 역사 만들기"였는데, 역사학에서의 팩트와 재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었습니다. 역사의 재구성이라고 하니까, 몇 년 전에 이 말을 몰라서 나한테 역사의 재구성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울부짖었던 모 님이 생각나는군요. 역사학의 ㅇ도 모르면서 달려드는 불나비들 보는 것도 좀 지치는 일이죠.

김기봉 선생님은 "역사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역사학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역사는 팩트를 놓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이 때, "단 하나의 진실, 단 하나의 팩트로 과거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유사역사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미묘합니다. 저는 김기봉 선생님의 정의를 따르진 않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의 기본을 유린한 것이므로 당연히 유사역사학이겠습니다만, 그것만으로 유사역사학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유사역사학 안에서도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닌데 요서는 우리 영토였다는 주장이 있고, 아예 중동까지도 다 한민족의 영토였다는 주장도 있죠. 특히 이런 주장에서 팩트로 <환단고기>를 내세운 뒤 여러가지 해석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보면 유사역사학이라는 것도 역사학과 다를 바 없이 팩트를 놓고 해석하는 "학문"일 수 있죠.

김기봉 선생님은 그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데이터의 진위에 대한 것입니다. 데이터 자체가 날조일 때는 그것은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였죠. 유사역사학에 대한 정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들은 <환단고기>는 날조된 데이터죠. <규원사화>, <단기고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날조를 뛰어넘고자 <환단고기>는 인용하지 않는다는 유사역사가도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사나 일본사의 사료를 제멋대로 배열하고 해석해서 자기 주장에 이용하죠. 그렇다면 이들은 어찌되었던 날조 데이터를 사용하지는 않으니까 역사학의 범주에 넣어주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기봉 선생님은 역사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학문이 되어가고 있는데(역사학이 무력하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심) 이를 뛰어넘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지혜를 통찰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과연 역사학이 그런 실용적인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최성철 선생님은 "진실과 허구 사이 :서양에서의 유사역사학 사례들"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역사학을 네 종류로 파악했습니다.

(1)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일반 역사학’
(2)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논쟁 역사학’
(3)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제도권에서 유행하는 ‘유사 역사학’
(4) 도저히 역사학으로 분류할 수 없는 ‘비(非)역사학’

그러나 이런 분류는 유사역사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4)가 유사역사학이고 (3)은 재야사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설이나 설화 등을 바탕으로, 쉽게 말하면 야사를 바탕으로 이야기함으로써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유행하는 역사 이야기들 있습니다. 이런 것을 모두 유사역사학이라고 이야기하면 곤란합니다. 이럴 때 역사학은 경직되어져 버리고 (1)의 범주를 벗어난 해석은 "유사역사학"이라고 낙인을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라고 말하는 것은 제가 외국 사례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는 합니다만), 제도권 안에서도 유사역사학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3)과 같은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어제 뒷풀이 자리에서 최성철 선생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간 제약상 인하대의 고조선 연구소 문제까지는 이야기를 못했네요.

문제는 여러 학자들이 역사학에서 "팩트"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뇌에 빠져있는 동안 대중은 "바른 역사"를 주장하는 유사역사가의 선전선동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 무거운 마음으로, 팩트가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고준담론을 논하신다면, 광주에 북한군이 와서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주장도 그것이 하나의 팩트로 나왔으니까 논의해봐야 한다고 할 것이냐, 전두환 회고록도 팩트니까 역사학이 수용하고 주장의 하나로 동등하게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과거가 되고, 그것이 역사가의 선택을 받으면 역사의 후보에 오르며, 역사가들의 검증을 거치면 역사로 자리매김됩니다. 과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과거의 사료가 불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불충분한 사료로 추정을 하다보면, 무엇이 옳은 해석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추정의 과정을 더욱 정교화해나가는 방법들을 터득했고, 여러 인접학문의 도움과 비슷한 유형의 다른 지역과 국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서 과거 해석을 변화시켜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최성철 선생님도 그런 의미로 말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논의의 깊이가 너무 위에 계신 거죠. 역사학자로서 팩트와 해석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작업입니다만, 그 관점에서 유사역사학을 보는 것은 유사역사학이 역사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밤나무에서는 밤이 열리지만 나도밤나무에서는 밤이 열리지 않습니다. 종이 다른 것이죠.

유사역사학과 마찬가지인 유사과학을 집어넣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과학자에게 유사과학이 과학의 일부분이냐고 묻는다면, 답이 명확합니다. 안아키와 같은 해악이 벌어지는 게 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나 전자레인지를 쓰면 화학전 변성이 일어나서 안 쓴다와 같은 사소하기도 하고 그냥 자기 혼자 불편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백신 안 맞히기처럼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들이 유사과학에서 나옵니다. 유사역사학에도 이런 경중이 있는 것 뿐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사실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훈련을 거듭하기 때문에 - 역사적 사실이란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새로운 사실이 등장하면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만, 이런 훈련을 통해서 이상야릇한 주장이라 해도 일단 검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들어도 무조건 쳐내지 않고 잘 모르는 건 잘 모른다고 말하게 되죠. 그리고 해당 사안에 어떤 검토가 있는지는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은 분들은 잘 모릅니다. 이렇게 학자적 태도로 모든 토픽을 다루기 때문에 유사역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 것이죠. 어떤 일이건 선입견으로 단정짓지 않고 의심하는 버릇을 가져온 당연한 자세입니다. 이것은 마치 알 수 없는 약초가 만병을 고친다는 말을 들은 과학자가, 여기에 뭔가 독특한 성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실험부터 해봐야 알 수 있겠지,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실험을 통해서 가짜라는 것이 충분히 밝혀져 있는 것이라면 대번에 안 된다고 말하겠죠. 말하자면 영구기관을 개발했다고 들고오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의 주장은 아직도 역사학자들에게는 잘못 되었다는 것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 대회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유사역사학이란 무엇인가?>에 어떻게 반영할까 고민스러워졌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집어넣는 게 맞을 것 같기는 한데, 이제 조판도 된 책에 이런 내용을 끼워 넣으면... 아흐...

유사역사학 이야기 (13) 만들어진 한국사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라는 게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이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다 알려주잖아요. 아래 캡처는 다 거기서 가져온 겁니다.

의백학교라는 걸 세웠다고 하네요. 백범 김구와 의암 손병희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두 분이 여기 정체를 알면 기절할 거예요. 이 사람들의 뿌리는 친일-독재로 얼룩져 있으니까요.

이 학교에서 11주 44시간 교육을 한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 댓가로 받아가는 돈이 1백만 원이에요. 200명에게 걷겠다고 하니, 2억 원이군요. 유사역사학처럼 돈벌기 쉬운 데가 없는 거죠.


이 사람들이 민족 감성에 호소하는 법이 이래요.


국사찾기협의회... 여기 대장이 안호상이었어요. 누구냐 하면, 일민주의라고 이승만 독재철학 선전관이었죠. 초대 문교부장관으로 학도호국단을 만들어 학원의 병영화에 앞장 선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 단체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은율 군수, 황해도 사회부장 같은 고위문관직을 지낸 문정창이 있었어요.

박정희의 유신과 독재를 찬양하면서 역사학자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넣으라고 칼침 맞는 수 있다고 말하던 임승국이 있네요.

친일 단군교의 명교학원 우등생 이유립도 있었죠.

여기 기관지는 간도특설대 출신의 박창암이었고요.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니깐요.


그 친일부역 매국세력이 만드신 단체가 국사찾기협의회에요. 이 사람들아.

자칭 역사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자기들 뿌리 역사를 몰라요. 쯧쯧.

네이버웹툰 칼부림 *..역........사..*

네이버에 "칼부림"이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입니다.

스토리텔링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역사 고증 역시 철저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인조반정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함이가 활을 쏘는 장면입니다. 노란 원으로 제가 표시했는데 엄지손가락에 활깍지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함이가 편전을 긴급히 제작해서 쏘는 장면에서도 애기살을 날리는 것이 정확히 묘사됩니다.


인조반정을 성공리에 이끈 무관 이괄.

그는 서북면의 방어를 책임진 부원수가 되어 영변에서 강군을 조련합니다. 함이는 그가 아들처럼 아끼는 부하입니다. 그런데 함이의 양부는 왜인입니다.

임진왜란 때 항복한 항왜들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인 서아지가 함이의 양부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차차 나오는데, 함이는 사실 서아지의 주군의 서자입니다.

함이는 엄마가 비참하게 강간 살해당했고 그 현장에서 원수의 눈을 찔러 멀게 만들었지만 원수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언제가 그 놈을 잡아죽인다는 복수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양부인 서아지는 함이가 평범한 일생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이 웹툰의 엄청난 점은, 이게 다 붓으로 그린 만화라는 점입니다.


작가님이 붓이 제일 편하다고 전부 다 붓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ㄷㄷㄷ


마상편곤의 위력!


포수대가 총을 쏠 때 보면 팔에 화승을 감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장군의 투구도 고증 엉망인 영화처럼 되어있지 않고 턱밑에 조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창 돌격 시, 당파가 어떻게 방어를 펼치는지 보여줍니다.

대충 아무 회나 골라서 캡처를 떠본 것이 이러합니다.

이괄의 반란, 남하 작전에서 도강 시의 전투와 한양 점령 후 계곡 전투는 정말 백미입니다.

1부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의 과정. 2부가 이괄의 반란으로 이어지고 3부가 되면 주인공 함이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심양에서 누루하치 일가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들어오는데, 이곳은 함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3부 후 휴재 중인데요. 지금 빨리 따라잡으면 4부 시작할 때 따라가며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4부에서는 주무대가 요동으로 옮겨갈 것 같네요. 점차 정묘호란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이 작품에는 쟁쟁한 분들이 고증을 해주고 계십니다.


정말 역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볼 필요가 있는 후덜덜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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