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초록불의 잡학다식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객기로 뭉친 선비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조선 시대 과거 중에는 성균관 유생들만 치는 관시(館試)라는 게 있었다.

원점(성균관 식당에서 밥 먹으면 찍어주는 점)이 300점이 넘어야만 칠 수 있는 시험인데 50명을 선발했다.

성균관 정원이 200명이니까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세종 때 성균관 유생 중에 공기(孔頎)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관시를 치게 되었는데, 응시 인원이 51명이었다.

즉 1명만 떨어지는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이 시험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공기는 초장을 치지 않았다.

"어쩌려고 그래?"
"걱정마라. 1명 떨어지는 시험인데 내가 떨어지겠냐?"

그러더니 중장에서도 술만 마시면서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걱정 마, 걱정 마. 종장이 있으니까. 딸꾹!"

이러자 남은 50명이 뿔다구가 났다. 그들은 종장 때 공기에게 술과 안주를 퍼먹였다. 공기는 신나게 먹고 마신 끝에...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50명은 합격하고 공기만 떨어졌다.

공기는 세종 29년에 문과 급제를 했다.

이때 성적은 33명 합격자 중 32등. 그러니까 꼴등 두 번째로 붙었다.

원래 실력이 그리 출중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

뒤에 성균관 대사성까지 했는데, 성균관을 어찌 다스렸을지 모르겠다.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초록불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8 관련글(트랙백) 0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orumi.egloos.com/m/7526734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