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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끌어다 붙이려다 보니...

모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A) 강희제는 "혼동강이 장백산 뒤에서 흘러나와서 선창船廠의 타생오랄을 거쳐 동북쪽으로 흘러서 흑룡강과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이는 모두 중국의 땅이다. 압록강은 장백산에서 동남으로 흘러서 서남으로 향해 봉황성과 조선국 의주 사이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압록강의 서북은 중국의 땅이고 강의 동남쪽은 조선의 땅이므...

간도는 빈 땅이었으니 차지하면 된다는 논리의 빈틈

영조 7년(1731) 6월 청나라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청나라는 옹정 9년의 일이죠.압록강 북쪽 봉황성 근처에 초하草河와 애하靉河라는 강이 합해져서 중강中江으로 들어가는 지점이 있는데 이 지방을 만뉴샤오[莽牛哨]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 조선인과 청인 사이의 밀무역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밀무역을 단속하고자 봉천 장군 나소도那蘇圖는 이곳에 소선小船 4...

간도 문제를 보는 시각의 왜곡

간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할 정도의 왜곡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이것은 모 번역책의 역자 서문이다. 읽어보자.이 회담에서 조선국 대표 이중하 선생은 국경석에 기록된 비문의 토문강은 송화강 상류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청국 대표는 자기네가 일방적으로 세운 비문도 무시하며 홍단수로 감계할 것을 강요하자 이중하 한국 대표는 나의...

조선말 간도 문제

1882년 청나라는 경원부사 이희영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의 내용은 조선의 빈민들이 국경을 넘어와 땅을 차지하고 개간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세금을 걷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종 19권, 19년(1882 임오 / 청 광서(光緖) 8년) 8월 7일(경신) 3번째기사의정부에서 길림과 훈춘에 공문을 보내는 문제에 관하여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조선 백성은 언제 간도에 들어가 살았을까?

간도가 조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개 이렇습니다.1. 조선에서 6진을 개척했을 당시는 두만강이 국경 맞음.2. 청나라가 건국한 뒤 중원으로 들어가 봉금령(1677년)이 내리고, 간도는 무주공산이 되었음.3. 그후 그 땅으로 조선 사람들이 넘어가 개척하기 시작했음.4. 청나라에서 이 문제로 영토를 획정하고자 목극등을 파견함(1712년).5....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

김지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누구냐하면, 청나라에서 조청국경 확정을 위해 파견한 사신 목극등을 맞이한 조선 관리 중 한 명입니다. 조선 측 대표는 박권이었고 김지남은 수석통역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지남은 회담에 참여한 내용을 자세히 적어서 남겨놓았는데, 이 책의 이름이 <북정록>입니다.따라서 <북정록>을 읽어보면 양국 국경에 대해서 확실하게 ...

두만강 너머

1.시간도 없고... 언제 쓰려고 준비 중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약이 없어서 그냥 간단한 이야기 하나 합니다.2.1658년 청은 러시아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면서 조선에 지원군을 보내라고 명합니다.이것이 바로 나선2차정벌! (침략만 당했다는 우리나라 역사는 어디로?)3.2차 정벌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1654년에도 1차 출동했...

간도 떡밥 - 조중동도 보지 마세요

[중앙일보] 뉴라이트교사연합 "'대마도 우리 땅'교육 실시할 것" [클릭]“대마도는 임진왜란 이후 약탈돼 일본 땅이 되었다”“역사에 우리 땅으로 명기되어 있는 대마도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영토임을 주장한다”“일본이 중국과 체결한 간도협약 역시 무효이며, 북간도와 서간도 모두 대한민국 땅임을 천명하고 이에 대한 교육도 병행할 것”어디부...

간도협약

간도협약 전문 間島條約 全文간도(間島)에 관한 청일 협약 1909년 9월 4일 조인(調印)대일본제국 정부와 대청국 정부는 선린(善隣)의 호의(好誼)에 비추어 도문강(圖們江)을 청.한 양국의 국경임을 서로 확인함과 아울러 타협의 정신으로 일체의 변법(辨法)을 상정(商定)함으로써 청.한 양국의 변민(邊民)으로 하여금 영원히 치안의 경복(慶福)을 향수(享受)...

대동여지도 - 백두산

요즘 백두산이 화제다. 백두산이 언제부터 민족의 영산이라는 소리를 들었을까?우선 환웅이 내려왔다는 곳을 백두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근거가 없는 소리다.삼국유사에서 일연은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을 묘향산이라고 지적했으니까.동명성왕 이야기에 나오는 웅심산이 백두산일 수는 있겠다.하지만 그 때문에 신성시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그러고나면 관련 전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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