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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중의 막장 - 충혜왕 [2부]

그럼 2부 시작합니다.개천절이라서 개천절 특집 포스팅이나 해볼까 했으나, 쓰려니까 나름 복잡하군요. 그래서 그냥 못 맺은 충혜왕 이야기나...충혜왕은 조적의 난을 계기로 국내에 남아있던 심양파를 박멸했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운 경화공주도 유폐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겠죠.하지만 그때!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원나라에서 사신이 온 것입니다. 원...

막장 중의 막장 - 충혜왕 [1부]

고려 27대왕 충숙왕은 공원왕후 홍씨에게서 2남을 얻었습니다. 두 아들은 모두 왕이 됩니다. 28대 충혜왕과 31대 공민왕이죠. 둘 다 정상은 아니었어요.충숙왕은 건강이 좋지 않아 1315년에 왕위를 장남 보탑실리에게 물려줍니다. 이때 보탑실리의 나이는 16세. 네, 혈기왕성한 나이였죠.고려의 사정상 왕이 되었을 때 중국에 있습니다. 충혜왕은 왕이 된 ...

19년을 도망치다

고려뿐 아니라 아마 한반도 역사상 최고 색마로 뽑힐 충혜왕. 충혜왕이 총애한 여인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기장수 임신林信의 딸이었습니다. 본래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종이었는데 충혜왕의 눈에 띄는 통에 바로 옹주로 출세했습니다. 사기장수 집 딸래미라 해서 사기옹주沙器翁主라고도 불렸지요. 정식 명칭은 은천옹주銀川翁主였습니다. 단양대군 왕후王珛는 충렬왕의 원자...

두 번 물에 던져지다

1250년. 고려 최고집권자인 최항은 계모 대씨의 아들 오승적吳承績을 바다에 던져 죽였습니다. 최항의 계모인데, 왜 아들 성이 최씨가 아니고 오씨였을까요?대씨는 대장군으로 사공까지 오른 대집성의 딸로 본래 오씨 집안에 시집가서 오승적을 낳았는데, 최우의 후처로 들어간 것입니다. 대집성은 최우의 심복 중 한 명이었죠. 1232년에 과부가 된 딸을 최우에게...

까불면 죽는다

고려 시대에 만전이라는 중이 진도의 한 절간에 있었습니다.이 중이 안하무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고려 최고의 실력자, 국왕도 능가하는 최우의 서자였기 때문입니다.만전의 휘하에 통지라는 중이 있었는데 이 중의 횡포가 가장 심했습니다. 대개 완장 찬 인간들이 더 설치게 마련이죠.이때 전라도 안찰사로 김지대金之垈가 부임...

3대를 이어 재상 되기

서신일徐神逸이란 사람이 신라 시대에 살았습니다. 어느날 집으로 등에 화살을 맞은 사슴 하나가 뛰어들어왔는데,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화살을 뽑고 숨겨주었죠. 사냥꾼이 핏자국을 따라왔다가 사슴을 찾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날 밤 서신일의 꿈에 신령이 나타났습니다."공이 구해준 사슴은 바로 제 아들입니다. 공의 도움으로 요행히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향후...

한국의 역사가 10

16. 일연일연(1206~1289)은 [삼국유사]의 지은이다.지금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에서 김언필金彦弼과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 않은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압량면 삼성산三聖山 자락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산의 이름이 삼성산이 된 것은 여기서 원효, 설총, 일연...

한국의 역사가 9

15. 고려 : 실록편수자들 (2)먼저 고려실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충렬왕 33년(1307) 11월에 원나라에 실록 185책을 바친 일이 있다. 나라의 실록은 왕도 열람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을 외국으로 반출한 것이다. 당대에도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말리지는 못했다. 덕분에 때로는 중국 땅 어디선가 고려 실록이 발견되는 일이 없을...

한국의 역사가 8 [수정]

14. 고려 : 박인량 박인량(? ~ 1096)은 앞에서 다뤘어야 하는데, 깜빡 빼먹은 케이스. (먼산)박인량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1075년(문종 29)에 요나라에 진정표陳情表를 보내 요가 보주(지금의 의주) 지역에서 철군하게 만들었다. 박인량은 천하에 왕토가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요나라를 띄운 뒤에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가 ...

나라의 시작이라는 게 다 그렇지...

고려 태조는 비록 포학에 갈음하여 관대한 정치를 하여 세상을 구제한 공이 있기는 하나, 궁예(弓裔)가 신라의 반적(叛賊)이 되었을 적에 고려 태조가 그의 신하 노릇을 하였으니, 이도 반적이므로, 이제 신라가 망하기 전은 참국(僣國)한 예에 따랐다. - 안정복, , 범례,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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