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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특별부록

이 글은 마지막 편에 추가해 놓은 글과 같습니다. 블로그라는 특성상 지나간 글은 다시 보지 않게 되므로 기왕 쓴 글, 따로 올립니다. 금이 고려와의 전쟁 후 고려를 얼마나 꺼려했는가를 알려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서희의 담판 이후로 압록강 이남을 고려의 영토로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의 의주...

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4 (마지막)

5. 끝나지 않은 전쟁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윤관이 개경으로 가고 있던 중인 4월 8일 도지병마령할사都知兵馬鈴轄使 임언과 도순검사都巡檢使 최홍정(그동안 승진!)이 지키고 있던 웅주성이 다시 여진군에게 포위 당했다. 지금까지 고려군은 포위를 당한 경우 기습적으로 뛰어나가 여진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했었다. 웅주성에서도 똑같은 작전을 펼쳤으나 너무 낡은...

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3

4. 9성의 수축과 여진의 반격고려가 새로운 땅에 세운 성의 이름은 모두 상서로운 글자로 만들어지고, 현지 지명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은 이름이다. 이후 만들어진 성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이 네 개의 영토는 고려인들로서는 처음 가본 땅이었던 것 같다. 윤관이 개척한 땅은 북으로 궁한령에 이른다고 했는데, 이곳에 길주성을 쌓았다고 했다. 즉 윤관...

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2

2. 여진 정벌 서전 - 정평, 장주 회복1107년 12월 4일 고려군 17만명은 장춘역에 집결했다. (장춘역은 본래 장주에 속하는 곳이므로 장주에서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다.) 1차 목표는 잃어버린 천리장성 내부인 장주와 정평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고려는 먼저 우야소에게 사신을 보냈다. [금사]에 따르면 사신으로 온 사람은 흑환방석黑歡方石이...

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1

1. 정벌전 이전의 간략한 사정1055년(문종9년) 천리장성 완공.1085년(선종2년) 완안부 영가盈哥(목종으로 추존) 추장이 됨1102년(숙종7년) 완안부 고려와 통교. 이때 완안부는 간도에서 갈라전曷懶甸까지 세력 범위를 확장. 갈라전은 현 함경도 일대로 추정. 1103년(숙종8년) 우야소烏雅束(강종으로 추존). 장군 석적환石適歡을 갈라전에 파견하여 ...

윤관 9성 문제의 핵심

앞서 글을 쓴 뒤 공험진 두만강 이북설 주장의 근거를 다시 살펴보았는데,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1. 유리한 사료만 줄기차게 내세운다공험진 두만강 이북설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세종실록지리지]의 함길도 길주목 경원 도호부 편이다. 이 자료에는 큰 문제가 있는데, 두만강 이북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중 ...

윤관의 9성

[조선일보] 윤관 9성 최전방은 두만강 북쪽 [클릭]윤관 9성 역사바로잡기 운동본부(본부장 이형석)라는 곳에서 교육부 장관에게 윤관 9성 위치를 바로잡아달라고 청원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관계가 애매하게 설명된 부분이 대번에 눈에 들어온다. 본래 이 단체가 제출한 원문을 보고 싶었지만 홈페이지도 없는 단체인 모양이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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