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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교과서가 전하는 기자조선의 역사

1910년 11월 일제는 50종의 책을 금서 처분하고 압수했는데, 이것이 잘 알려진 20만권 분서설을 낳았다. 최근 나는 이때 금서처분되었던 책 중에서 기자조선의 진실을 알리는 내용을 발견했다. (진짜?)이 책은 대한제국 시절 교과서로 사용된 책이다. 대체 모조리 분서해버린 이 책이 어떻게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거냐!국민교육회에서 1906년 6월에 편찬...

이승만과 일진회

한겨레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한겨레] ‘이승만 고종 밀사설’ 깨졌다 [클릭]위 기사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미국 기사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기사들은 미 의회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신문검색 서비스(chroniclingamerica.loc.gov)를 이용해서 찾아낸 것으로 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병구는 Rev. P. K. Yoon으로 이승만은 ...

박람회 구경거리가 된 조선인

[팝뉴스] 오랑우탄과 함께 동물원에 전시되었던 피그미족 남성 [클릭]기사를 살펴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사람으로서 동물원에 전시된 채 관람객을 맞아야했던 비운의 인물에 대한 사연은 지난 4월 말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보도된 후 해외 인터네 사이트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안타까움을 유발하고 있는 중이다.(중략) 벵가는 1906년 뉴욕 브롱크...

민비냐, 명성황후냐?

한일병합조약과 더불어 이런 이야기에 슬슬 재미를 느껴가는 것 같습니다...^^;;민비, 명성황후. 과연 어떤 칭호가 올바른 것일까요?어떤 이들은 민비라고 부르면 황후를 낮춰부르는 거라고 발끈하고, 다른 이들은 민비 생전에는 제국이 아니었는데 명성황후로 부르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위배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칭호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이완용은 본래 부자집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가친척인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이호준 자신이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완용은 말년에 "내가 양자로 들어온 이후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나의 책임을 소홀히 하여 나를 양자로 데려온 본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것은 이호준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없었...

이완용 옹호라는, ㄱ과 ㄴ도 구분 못하는 글

여러분이 이완용 충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 궁금해하셨는데 마침 트랙백을 걸어서 실체를 드러냈으니 이들의 논리가 궁금한 분은 방문해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한국인들의 전형적인 착각 고종태황제의-친일 인신공격으로 점철된 글쓰기는 논리가 달리는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인데, 이 블로그의 주인장도 변함없이 그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치졸한 논리를 덮어보고...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이완용이 순종의 배항공신이 되어 종묘 공신당에 배향될 뻔한 일이 있었다.처음 순종묘에 배향될 공신은 1928년 5월 3일 박영호, 민영휘, 한규설 등 19명으로 구성된 원로대신들이 선정하였는데 후보는 모두 9명이었다. (이하의 내용은 동아일보 1928년 5월 11일자 보도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음.) 그 아홉 명은 다음과 같았다.이유원, 서당보, 송...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3.1절 특집 포스팅입니다. 좀 길겠네요. 중요한 사실만 정리했는데도 제법 내용이 깁니다.이완용李完用은 나라를 망하게 한 3개의 조약에 서명을 한 사람입니다. 을사보호조약,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한일합병조약이 그것이죠.최근에는 이완용이 사실은 충신이며, 그는 대한제국의 황실에 충성했을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도 인터넷에 떠돌더군요. 상식적으로 충...

간도협약

간도협약 전문 間島條約 全文간도(間島)에 관한 청일 협약 1909년 9월 4일 조인(調印)대일본제국 정부와 대청국 정부는 선린(善隣)의 호의(好誼)에 비추어 도문강(圖們江)을 청.한 양국의 국경임을 서로 확인함과 아울러 타협의 정신으로 일체의 변법(辨法)을 상정(商定)함으로써 청.한 양국의 변민(邊民)으로 하여금 영원히 치안의 경복(慶福)을 향수(享受)...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모레, 8월 29일은 우리가 국치일이라 부르는 한일합병조약이 발효된 날이네요.1910년 8월 4일 이완용은 [혈의누]로 유명한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소송록(고마쓰 미도리)에게 보내 합병을 제의합니다. 소송록이 놀랄 정도의 제안이었습니다. 한국의 총리대신이 잡숴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줄은 몰랐던 것이죠. 고마쓰는 이인직의 동경유학 시절 선생이었습니다.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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