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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vs 박정희

[중앙선데이] “박정희가 다 했다니 … 너무한 거짓말” - 이승만 아들 이인수 인터뷰 [클릭]위 인터뷰에는 이런 말들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닦은 토대 위에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이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1공화국 문서를 소각해 우리나라 건국초기 재정사를 쓸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일제에 충성한 박정희가 국부가 되는 역사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

유신이 퍼뜨린 기억 - 토지&식량수탈론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지수탈설이 교과서에 최초로 실리는 것은 1962년 역사교육연구회라는 단체가 만든 중등 국사교과서에서입니다. 이 교과서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토지를 수탈한 결과 일본인의 토지가 전국의 거의 절반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무슨 근거가 제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뒤이어 1967년 민영규가 쓴 교과서에 전국 국토의 40%...

박정희의 회고

내가 본 자료 중에 박정희가 공적인 경우에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박정희 일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뿐이었다. 아들 박지만이 육사에 입교할 때 "육사생활의 남아로서의 호쾌한 나의 경험담" 등을 들려준 끝에 나온 이야기다. (육사 생활의 호쾌한 경험담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1977년 1월 29일내가 만주군관...

학생운동을 보는 두가지 시각 - 박정희의 경우

박정희는 4.19를 높이 평가하면서 학생들의 사회 참여에 아무 이의가 없었다.'기성 세대는 물러가라' - 이 목멘 외침은 젊은 청년 학생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겨레의 소리'이며 '시대의 소리'이기도 했다. 막다른 어려운 고비에 처한 조국의 앞길이 어둡다고 하면서도 그 어둠의 저편에 희망의 태양이 여명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진정 이 나라 젊은 세대요 청년...

4.19는 언제부터 "의거"라 불렸을까?

사람들은 흔히 5.16 이후 4.19가 의거로 "폄하"되었다고 종종 이야기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일일이 비교를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눈대중으로 살펴만 보았는데, 네이버에서 70년대의 신문에 4.19를 검색해보면 70년대 내내 4.19를 혁명으로 부르거나 의거로 부르거나 제각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것을 "의...

박정희가 바라본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결국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식민지로 만든 종주국에 의해서 뜯어 고쳐진 것이기 때문에 근대화가 잘못된 것이며, 경제적 침략과 일본 군국주의의 병참 기지가 되는 데 지나지 않았으니, 해방 후까지 그와 같은 식민적인 독소가 오래 남아 있어서 우리 겨레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방해하여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중략)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박정희의 만주군 혈서지원

어제 한 분이 바로 이 문제를 질문했는데, 오늘 보도가 나온 것을 보니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연합] `박정희 만주군에 혈서지원'…옛 신문기사 [클릭]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공한 전문 번역은 아래와 같습니다.혈서(血書) 군관지원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

이승만을 독재자며 무능하고 부정한 지도자라 규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해방 직후 이 땅에 무려 수십여 개나 되는 정당이 비 내린 뒤에 돋아나는 참대 순처럼 어지럽게 돋아나 결국 겨레를 갈기갈기 찢어나누고 파당 의식만 키워 놓은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지난날 이승만 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派만의 수지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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