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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과 포로

그냥 생각난 김에 써보는 땜빵성 포스팅.청이 병자호란을 일으켜서 후방의 걱정을 끊었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 큰 그림에서 간략한 정보만 가지고 말하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청이 병자호란을 통해 얻은 이익은 굉장히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포로다.병자호란 당시 조선 인구를 천백만 정도로 추정하는데, 기록에 남은 포로만 최소 50만 명 이...

병자호란 번외편

1. 삼전도비1637년(인조 15년) 3월, 청은 인조가 항복한 장소에 [대청황제공덕비]를 세우라는 명을 내렸다. 이것이 이른바 [삼전도비]다.11월 3일 비석을 세울 단을 준공했다. 11월 25일 청 사신 마부대(마푸타라고도 쓴다.)가 검수하여 합격 판정을 내렸다.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청은 본래 비문을 보내주겠다고 했었는데, 일이 번거롭다고 하여 ...

병자호란 3편 (쫑)

5. 항복인조는 청태종이 자기를 속여 끌어내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청태종은 이미 20일에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만약 간사하게 속이는 계책으로 그대를 취한다면 천하가 크기도 한데 모두 간사하게 속여서 취할 수 있겠는가. 이는 와서 귀순하려는 길을 스스로 끊는 것이다."천하를 상대한 내가 조선 국왕을 속임수로 대해서야 어찌 ...

병자호란 2편

4. 병자호란조선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전쟁만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남한산성도 수리를 해놓고 침입로인 백마산성에 병력과 군수물자를 보충하기도 했으며 곳곳에 산성도 쌓았다. 다만 이런 일을 하느라 백성들을 들볶으니, 최명길은 전란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등을 돌릴까 우려하고 있었다.당시 의주부윤은 임경업이었다. 조선 정부는 당연히 의주에서 압록강 도강을 ...

병자호란 1편

1. 광해군명나라 시절 여진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건주여진(무순에서 압록강), 해서여진(장춘, 길림), 야인여진(흑룡강 일대)이 그것인데 건주여진에서 누르하치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누르하치는 1616년(광해군 8년) 1월 58세의 나이로 후금後金을 건국하고 대칸의 지위에 올랐다. 뒷날의 청태조다. 누르하치가 요동 일대에 농업을 시작하자 명나라가 ...

삼전도비 번역

대청국 성황제의 공덕비보기대청국 숭덕 원년(1636년) 겨울 12월에 어질고 너그럽고 그리고 온화한 성황제는 화평을 깬 것이 우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크게 성을 내어 위엄있는 군사를 이끌고 내림(來臨)하여 동녘을 향하여 불 붙듯이 진군하니 아무도 두려워서 대항하지 못했다. 그때에 우리의 임금은 남한에 자리를 정하고 두렵고 겁이 나서 봄얼음을 밟고 날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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