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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Q이야기 13 - 위서2

환Q가 말했다."내가 영영 안 돌아올 줄 알았겠지? 하지만 난 너따위에게 지지 않아.""그러시든지.""너 지난 번에 이렇게 말했다. '[위서]란 지은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짓지 않은 책을 가리킨다'라고. 그랬지.""그랬지."환Q는 낄낄거리며 웃었다."니 말은 뒤집어서 말하자면 감히 환단고기를 비난할 수도 없는 말이 된다는 건 아냐?""뭔 소리야? 손바닥이...

한국의 역사가 10

16. 일연일연(1206~1289)은 [삼국유사]의 지은이다.지금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에서 김언필金彦弼과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 않은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압량면 삼성산三聖山 자락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산의 이름이 삼성산이 된 것은 여기서 원효, 설총, 일연...

한국의 역사가 9

15. 고려 : 실록편수자들 (2)먼저 고려실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충렬왕 33년(1307) 11월에 원나라에 실록 185책을 바친 일이 있다. 나라의 실록은 왕도 열람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을 외국으로 반출한 것이다. 당대에도 이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말리지는 못했다. 덕분에 때로는 중국 땅 어디선가 고려 실록이 발견되는 일이 없을...

한국의 역사가 8 [수정]

14. 고려 : 박인량 박인량(? ~ 1096)은 앞에서 다뤘어야 하는데, 깜빡 빼먹은 케이스. (먼산)박인량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1075년(문종 29)에 요나라에 진정표陳情表를 보내 요가 보주(지금의 의주) 지역에서 철군하게 만들었다. 박인량은 천하에 왕토가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요나라를 띄운 뒤에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가 ...

한국의 역사가 7

13. 고려 : 각훈 (?~1230?)각훈覺訓은 고려 중기의 인물로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215년(고종 2년)에 을 왕명을 받들어 편찬했으며, 이인로(1152~1220)에게는 후배가 되고, 이규보(1168 ~ 1241)가 그의 부음을 듣고 1230년에 시를 썼기 때문에 이 해에 죽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각훈은 각월覺月이라고도 한...

불편한 진실은 알려야하는가, 감춰야 하는가?

명말청초 여유량呂留良이라는 성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10대때 명은 멸망하고 말았죠. 명의 멸망은 사실상은 농민반란군 이자성 군에 의한 것이었고, 여진족이 세운 청은 이자성 군을 무찌른다는 명목 하에 중국으로 들어와 강토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 명의 후계자들을 쓸어버렸죠. 여유량은 청조에 봉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성리학에 입각해서 반청을...

한국의 역사가 6

10. 고려 : 홍관 (?~1126)고려사 홍관 열전예종睿宗이 일찍이 편년통재編年通載를 열람하고 홍관洪灌에게 명하여 삼한三韓 이래의 사적事跡을 찬집撰集하여 바치게 하였다.고려 초에 라는 역사서가 있었다고 한다. 이름으로 보아 편년체 사서였을 것이다. 동양의 역사서 편찬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는데, 편년체 사서는 연도 순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의 역사가 5

9. 고려 : 삼국사기 편찬자들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주도하에 총 11인(김부식 포함)이 편찬한 책이다. 이들의 이름은 이렇다.관구管句김충효金忠孝 · 정습명鄭襲明참고參考최산보崔山甫 · 이온문李溫文 · 허홍재許洪材 · 서안정徐安貞 · 박동계朴東桂 · 이황중李黃中 · 최우보崔祐甫 · 김영온金永溫 관구라는 직책은 "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과 보문각寶文閣에 소속된 관...

한국의 역사가 4

8. 고려 : 김부식(1075~1151)고려사 세가 인종23년12월 임술에 김부식金富軾이 를 찬하여 바쳤다.그 유명한 를 지은 김부식의 차례. 특별히 설명할 것이 있나 싶을 정도지만 간략하게 그의 생애를 정리해보기로 한다.김부식은 경주 김씨다. 즉 신라 왕가의 혈통이다. 이 때문에 도 신라 중심이 되었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가 신라 중심인 측면이 없...

한국의 역사가 3

7. 신라 : 최치원(857~?)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신라말의 명유名儒 최치원崔致遠은 을 지으면서 모두 아무개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의 칭호를 쓰지 않았으니 혹 그 말이 야비하여 칭할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 까닭일까?삼국유사 제5의해편 의상전교이러한 사실이 최치원이 지은 과 원효대사의 행장에 있다.최치원의 견해는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이나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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