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역사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 금성 출판사의 굴복 선언을 보며(42)2008.11.29
- 그것을 유사역사학이라 부르기로 한다(30)2008.11.27
- 자학사관이라면 이쯤은 되어야(102)2008.11.26
- 한국 불교 종파의 간략한 정리(11)2008.11.19
- 조선에서 석유가 난다?(20)2008.11.18
- 조선과 타타르(21)2008.11.17
- 조선의 둘레(17)2008.11.16
- 조선왕조실록 CD롬 뒷이야기(26)2008.11.15
- 의자왕의 증손녀 묘비명 발견(25)2008.11.14
- 황진이 - 與蘇陽谷여소양곡(5)2008.11.11
- *..역........사..*
- 2008/11/29 19:54
[동아일보] 금성출판사 김인호 대표 “혼란-오해 커지지 않도록 결단” [클릭]“교육과학기술부가 26일 출판사에 보낸 수정 지시안이 법적 명령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교과부가 발행자인 출판사 측에 수정을 지시한 만큼 출판사의 전권으로 이를 100% 수용하게 된 것”“발행자의 권한으로 수정 지시를 받아들인 만큼 집필진의 저작권 등 법률적인 문제는 출판사가 ...
- *..역........사..*
- 2008/11/27 16:04
그 시작을 어디서 잡아야 할까?이거네, 저거네 말이 많아도 역시 문정창으로부터 잡는 것이 옳겠다. 그가 보여준 탁월하기까지한 제멋대로 한문독해술, 사료왜곡술, 비약신공은 후대의 사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까. 그리하여 그로부터 본을 받아 임승국, 이유립 등의 사료조작술이 발생했고 윤내현이니 이덕일이니 박성수니 같은 제도권 물을 먹은 변형까지 발생했...
- *..역........사..*
- 2008/11/26 19:52
흔히 조선시대를 5백년이라고 한다. 근 6세기 동안이나 한반도의 지배자였던 세습적인 조선 왕조는 그 동안 여러가지 변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밑바닥을 흐르는 한 줄기 특징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다.조선 사회는 여러가지 의미에 있어서 후세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특히 사색당쟁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친 양반 계급의 분쟁은 하나의 나쁜 습성으로 고질화되어서...
- *..역........사..*
- 2008/11/19 21:50
삼국시대 종파 - 이것이 다 우리나라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음
비담종毘曇宗(=구사종俱舍宗) : 4세기 경의 세친世親이 저술한 구사론俱舍論을 중심으로 성립된 종파.
중국에서는 진제眞諦가 한역.
성실종成實宗 : 3~4세기경 인도의 하리바르만이 쓴 성실론成實論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종파. 성실론은 412년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이 한역. 고구려의 혜자慧...
- *..역........사..*
- 2008/11/18 00:39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을 잡아먹는 사례로 이 석유 떡밥은 매우 좋은 예가 된다.말하자면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1. 석유가 고려에서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2. 현재 우리나라에는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3. 그러므로 고려는 석유가 나오는 곳에 있었으며 지금 우리나라 땅에 있지 않았다.정상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1. 석유가 고려에서 ...
- *..역........사..*
- 2008/11/17 19:17
타타르 관련 떡밥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군요.역시 대표적인 것은 <한국사 미스테리 60>에 있던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라는 구절이겠지요. 실제로 타타르는 여말선초에 우리나라 북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등장한다고 조선을 내몽고 옆에 옮겨놓아...
- *..역........사..*
- 2008/11/16 01:07
조선의 둘레는 만여 리라고 알려져 있다. 대동여지전도에 적힌 글을 따르자면 10,920리다. 어떤 바보들은 이것을 사방의 길이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둘레는 4만여 리가 되어버린다. 그랬다면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그럼 10,920리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함경북도 경흥에서 경상남도 동래까지 동해안 3,6...
- *..역........사..*
- 2008/11/15 20:48
1.
이하 내용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소문으로 들은 것이다. 내용의 정확성을 책임질 수는 없다.
2.
이걸 처음 개발하고자 서울시스템이 나섰을 때, 민추에서는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의 이유는 부정확한 곳이 많아서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교정을 보고나서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어느 천년에? 컴퓨터로 데이터베이스화하면 교정을 훨씬 쉽게 볼 수 있다고...
- *..만........상..*
- 2008/11/14 12:00
[동아일보] 백제 의자왕 증손녀 부여태비 묘비석 中서 발견 [클릭]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잡혀간 의자왕과 부여융의 후손으로 690년 출생, 스물한 살인 711년 결혼, 서른일곱인 727년 과부가 되었다. 기사 내용으로는 언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발견된 곳이 산시성으로 나오는데, 여기 산시성은 산서山西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장안...
- *..잡........학..*
- 2008/11/11 23:31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달빛 아래 오동잎도 모두 지고서리 속에 들국화도 시들었네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人醉酒三觴인취주삼상누각은 높아 하늘에 솟았지만사람일랑 석 잔 술에 벌써 취했네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흘러가는 물이야 거문고 곡조따라 차가워져도매화향은 피리 소리에 스며 퍼지리라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情與碧波長정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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