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역사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묘향산의 단군 유적

1. 단군대檀君臺 : 두타봉 서쪽 위치. 단군굴에서 산 정상 쪽으로 1리 정도 떨어져 있다. 주변의 높고 험한 봉우리가 이를 호위하고 있으며, 세상에서는 단군의 강림처로 전한다. 내빈발암에서 동쪽으로 1리 정도 떨어져 있다. 산비탈이 험하지만 깊은 곳을 넓고 편편하며 3개의 서까래를 세워 서너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가지고 있다. * "단군의 강림처"라는...

조선 시대의 고문 - 형문

조선 시대에 용의자를 잡았는데, 그가 죄를 실토하지 않으면 제일 먼저 가해지는 고문이 "형문刑問"이었습니다. "형문"은 "형신刑訊"과 거의 같은 말인데, 형신은 형문을 포함한 각종 고문을 모두 일컫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외에 "형추刑推"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원칙상 이런 고문은 하루 한 번만 시행해서 죄인이 죽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으나,...

정방의 - 고려의 학살자

정방의鄭方義는 고려 시대 인물입니다. 11세기 후반에 진주의 호족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신종 3년(1200년) 4월, 실권은 최충헌이 쥐고 있던 그 무렵 전국은 민란으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진주 지역에서도 공노비, 사노비들이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군은 마을 관리들의 집 50여호에 불을 놓고 사람들을 잡아 죽였는데 이 불이 정방의의 집...

아시아에 있어서의 민족주체성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각 지역의 민족의 형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랜 것이지마는, 민족의식이나 민족관념은 그 민족 형성 뒤에 오는 것이며, 특히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양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진출의 결과로서 그 자극을 받아 발생 내지 발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양반이란 무엇인가?

원래 양반은 세습되는 계급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분일 수는 있지만.원 개념은 문관을 동반, 무관을 서반이라 부르는데서 온 것이고 "두 개의 반"이라서 "양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조선은 세워지면서 양천제를 표방하는데요, 양천제란 "양인"의 "양", "천민"의 "천"에서 온 것입니다. 즉 조선은 원래 계급이 달랑 두 개였던 나라죠. ...

콩쥐 팥쥐로 보는 조선시대 여성 이름

딱히 확밀아 게임에 콩쥐, 팥쥐가 나와서 올리는 건 아닌 이야긴데...흠흠...우리나라 사람이면 어려서 누구나 읽게 되는 콩쥐 팥쥐 이야기.귀여운 소녀들의 이름에 왜 쥐가...오늘날 누구나 연상하는 혐짤을 올릴까 하다가 자제...아무튼 쥐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이야기에 왜 쥐가 등장하는 걸까 궁금했습니다.어딜 봐서 쥐가...조선시대 기록들을 보다 보면 여...

731 부대의 이시이 시로

만주 하얼빈에 있던 생체실험부대 731의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郎]...우리나라 위키백과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이시이 시로 [클릭]전쟁 이후 그는 전범으로 처리되지 않은 채(주일미군과 생체실험자료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계속 군복무를 하고 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31부대 시절부터 자신을 따르던 부하 군의...

똥맛

밥 때라면 읽지 마세요. 책임 지지 않습니다.위대한 세종대왕마마의 국민 계몽 프로젝트였던 『삼강행실도』가 낳은 부작용은 이미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지요. 그런데 부작용이라 하기도 그렇지만, 알고보면 역시 부작용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남제 때 유검루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유검루가 부임지에 있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관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달려갔...

국가가 장려한 식인(?) 사태

조선은 유교 국가로 효孝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이 아플 때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는데, 이때 흔히 쓰인 방법이 자신의 살을 베어 먹이는 행위였습니다.여기에 할애된 살 부위는 손가락과 허벅지였습니다. 다른 부위가 잘렸다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발가락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긴 하더군요.더구나 세종 때 엽기공...

괴소문에 대처하는 두가지 방법

조선 후기 현종 때 일입니다. 현종 2년(1661)에 도승지 남용익이 이런 말을 합니다."근자에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다는 설이 나도는데, 비록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많이들 말을 하고 있습니다."현종 때는 기상 이변이 잦아 대기근이 들었던 때입니다. 이 때문에 "식인"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도승지가 이렇게 운을 떼...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유사역사아웃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