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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둘이 굶어죽은 임금님

세종대왕에게 광평대군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관상에 굶어죽을 상이라고 하여 세종대왕이 발끈해서 많은 전답을 내렸다고 합니다.하지만 광평대군은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굶어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야사일 뿐, 사실 같지는 않습니다.그런데 실제로 굶어죽은 자녀를 둘이나 둔 임금님이 있으니...영조가 바로 그 대상입니다.영조의 아들 ...

무지갯빛 트로츠키 - 만주국 이야기

무지갯빛 트로츠키 1 -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대원씨아이(만화)그러니까 나한테 만주국이란 일본제국이 만주에 세운 괴뢰국가, 라는 것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동네였습니다. 이 만화의 결말을 장식하는 노몬한 전투도 그냥 그런 게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노몬한의 위치도 알지 못했음...이 만화가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유대인 망명지 건설에 대한 이야기...

문창극과 비숍 [추가 및 수정]

사람이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병일까요?문창극 총리후보자는 인용을 해도 참 "멋진" 부분들만 인용을 했지요. 친일파 윤치호나 최남선만 들먹인다든가 비숍의 글 중에서도 안 좋게 쓴 부분만 인용해서 "자학사관"이란 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1)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라면서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의료도구 - 입

입만 살았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실제로 입으로 병을 고치는 이야기입니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사례입니다.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김제(金堤) 사람 예빈 주부(禮賓注簿) 최이(崔頤)가 미친 병[狂疾]을 얻어서, 항상 칼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이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그 아들 섭지(涉之)가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아니하여 발광하지 못하게 하였고, 그 ...

화장실이 있으면 뭐하나?

궁 안에도 화장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 등은 매화틀이라 부르는 일종의 요강을 이용했지만 궁궐 안에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화장실이 필요했겠죠. 하지만 이 화장실들 과연 누가 이용했을까요?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생각해보기에는 신하들이 이용했겠지요. 소변을 참지 못하고 궁궐 계단에서 실례를 하는 통에 탄핵을 받는 경우도 있었으니...

몸에 좋다면 뭐라도 마다하리오

조선 영조 때 일입니다.영조는 담병痰病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담병이라는 게 뭐냐 하면...그냥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거라고 보면 됩니다. 담痰이라는 한자는 가래를 뜻하는 것인데, 한방에서는 몸에 생기는 안 좋은 물질을 통칭하여 담이라 부르고 이것이 고이면 병으로 발현한다고 말하죠. 우리가 근육통으로 팔을 못 들거나 해도 담들었다, 라고 말하는 것...

무례한 죄

역밸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 : 만화지만 왠지 있었을 법한... 조선 시대에는 관원이나 상전에게 무례하게 굴면 그것도 죄가 되었습니다.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으로 죄를 받는 경우야 무수하게 많이 있었는데, 불량산타님 질문은 그것과는 다른 경우입니다.딱 들어맞는 예는 아니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보면 그럴싸한 예가 있어서 소개해봅니다.조선 문종 때 일입니다...

사마천의 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

사마천은 8편의 부賦를 지었다고 하는데, 전해지는 것은 한 편뿐입니다.때를 못 만난 슬픈 선비의 노래라고 풀 수 있는 "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가 그것입니다. 사마천이 말년에 지은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슬프다! 때를 얻지 못한 선비여,홀로이 그림자만 돌아보니 참담하도다.언제나 극기하여 예로 돌아가고뜻과 행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했...

역사가의 사명 - 사마천

역사 공부를 하는 초심자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역사 상에서 악당은 늘 성공하는 것 같고, 선한 사람들은 역경을 겪다가 결국 불운한 처지로 인생을 마감하곤 하는 것이죠.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우울해집니다. 대체 역사란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도 하게 되죠.사마천도 동일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절의의 상징인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었...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 사마천

사마천은 애초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공자는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을 알고 242년 동안의 사적事蹟의 시비를 가려 천하의 의표義表로 삼았습니다. 천자를 비판하고 제후를 견책하며 대부를 성토함으로써 참된 군주의 일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말을 추상적인 말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보다 사건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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