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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가 2

4. 신라 : 김대문삼국사기 설총 열전(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 귀족의 아들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다. 전기傳記 몇 권을 지었는데, 그 중 , , , 가 아직도 남아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5년(528)이것은 김대문의 에 기록한 바를 의거하여 적은 것이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차차웅차차웅은 자충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은 "방...

한국의 역사가 1

1. 백제 : 고흥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375)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백제는 개국 이래 아직 문자로 사실을 기록한 일이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를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흥에 대해서는 일찍이 다른 책에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에는 , , 가 등장하는데 와 이들 가 ...

대동역사략의 특이한 기록들

마한기효왕 갑오 27년(B.C.87)에 임나 사람이 와서 산호를 공물로 바쳤다.양왕 무신 원년(B.C.73)에 임나 대인 인화사돌婣和辭突을 임나군주로 봉하였다.학왕 기사 25년(9) 백제왕 온조가 도읍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왕을 바닷가로 보냈다. 상대부 우정곡宇定轂이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마한이 멸망했다. 임나에 대한 기록이 매우 일찍 나오는데다가...

노블일지

1892.11.14 왕비의 생일축제오늘은 참 즐거운 날이었다. 이곳의 가을 날씨는 마치 고향의 인디언 서머처럼 상쾌하다. 오늘은 한국의 경축일로 왕비의 생일날이다. - 매티 윌콕스 노블, , 강선미, 이양준 역, 이마고, 2010, 38쪽저 날짜는 양력이므로 당연히 명성황후의 본 생일은 아니다. 음력으로 환산하면 9월 25일이 된다. (음력 환산은 한국...

박용만 - 이승만의 의형제

우성又醒 박용만朴容萬은 1881년에 태어났다. (그의 출생신고는 1882년으로 되어 있다.) 신채호는 임시정부 조직 때, 이승만의 국무총리 선출에 반대하며 후보자로 박용만을 추천했었다. 박용만. 그는 누구인가? 단재 신채호가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직에 이승만, 박영효, 이상재 등과 같이 추천되었던 인물. 하지만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손진태

유사역사가 사이트에 가보면 이병도는 천하의 죄인인데, 같은 대학에서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손진태는 찬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손진태(1900~?)는 지금의 부산에서 태어나 1924년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 입학했다. 이병도와 마찬가지로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등의 수업을 받았다. 니시무라 신지[西村眞...

신채호

단재丹齋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양력) 지금의 대전에서 태어났다. 신채호의 집안은 몰락한 남인으로 직계 조상은 신숙주다. 이곳은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가가 있는 충북 청원으로 이사했다. 8세 때부터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9세에 을 읽고 12~3세에는 사서삼경을 떼었다. 과 를 즐겨 읽었다. (...

역사 인식이 때로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학문 자체를 평가하지 않고 최고를 민족에 두거든. 이래가지고는 곤란해. 내가 반역자가 아냐. 지금 몇 시간이면 먼 외국을 드나들 수 있는데 이게 뭐야? 민족보다는 학문이 앞서야 해. 민족만 강조해서는 학문의 자유가 안 되고 학문도 안 돼.위 말은...월간중앙 1978 신년호 특별부록, 김두종 송상용 대담, 에 나오는 김두종 박사(1896~1988)의 이...

대장장이 신탄재

경상도 청도는 명검의 생산지였다. 그 시조는 벙어리 대장장이 신탄재申炭齋였다.이옥李鈺(1760~1815)은 신탄재가 만든 칼을 손에 넣고 이렇게 말했다. (신아전申啞傳)내가 일찍이 그가 만든 칼을 얻었는데, 그 날카로움이 머리카락을 불어 자를 수 있을 정도이고 얇기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칼을 감상하는 이들이 보고 말하였다."참 잘된 것입니다만...

6.25와 고당 조만식 선생

북한은 1950년 6월 10일 조만식曺晩植 선생과 남한에서 체포한 간첩 김삼룡金三龍, 이주하李舟河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남한 정부는 논의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만큼 조만식 선생의 위상이 컸던 것이다. 6월 19일 수락키로 하고 20일날 김삼룡, 이주하를 데리고 38선까지 나갔으나 북한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남한은 22일날 24일에 교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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