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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 이완용의 3.1 운동 경고문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뒤에 이완용은 그 악명에 어울리는데로, 3.1운동에 대한 비난과 참여자들에 대한 경고문을 세 차례에 걸쳐서 매일신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래는 그 전문.제1차 경고 - 4월 5일오호, 조선 동포여. 세상 말에 죽음 중에서 삶을 구한다는 말이 있더니 지금에 조선인민은 삶 중에 죽음을 구하니 이 어찌된 일이오. 얼핏 알아...

6.25와 고당 조만식 선생

북한은 1950년 6월 10일 조만식曺晩植 선생과 남한에서 체포한 간첩 김삼룡金三龍, 이주하李舟河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남한 정부는 논의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만큼 조만식 선생의 위상이 컸던 것이다. 6월 19일 수락키로 하고 20일날 김삼룡, 이주하를 데리고 38선까지 나갔으나 북한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남한은 22일날 24일에 교환하...

압록강은 흐른다

삼학년 이학기 때의 일이다.어느날 오후, 안과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붙들었다. 내 친구 상규였다. 상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일 저녁에 중대한 일을 의논해야 하니 남운 식당으로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기로 약속하고 무엇을 논의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상규는 나를 한쪽 옆으로 데리고 가더니 거의 속삭이다시피 하면서 우...

쇠말뚝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본 중에 쇠말뚝 이야기로 제일 오래된 거네요.184. 선산의 산맥山脈임진왜란 때, 왜군이 경상도 선산까지 쳐들어와서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때 왜군 중에 한 지사地師가 있어 그곳 산맥을 살펴보니, 많은 인재가 속출하고 국가는 나날이 흥기할 것 같이 보였었다. 그래서 왜군 지사는 이 산맥의 활기를 죽여버릴 양으로 군사들을 시켜...

유신이 퍼뜨린 기억 - 토지&식량수탈론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지수탈설이 교과서에 최초로 실리는 것은 1962년 역사교육연구회라는 단체가 만든 중등 국사교과서에서입니다. 이 교과서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토지를 수탈한 결과 일본인의 토지가 전국의 거의 절반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무슨 근거가 제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뒤이어 1967년 민영규가 쓴 교과서에 전국 국토의 40%...

야밤사제

1.대학은 학생들을 교육해 사회에 나가 훌륭히 일하게 만들지만, 대학 교육의 일차 목적은 상업적인 거래가 아니다. 따라서 교육을 단지 상품처럼 파는 행위는 일종의 타락이다.그렇다면 대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버드는 월마트도, 블루밍데일스 백화점도 아니다. 대학의 목적은 수입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과 연...

일제강점기 회고

아래 인용문은 이기백 교수가 쓴 책 중에 있는 에피소드를 옮긴 것이다. (원 글은 계간사상 1995년 여름호에 실린 것이다.)중학교 2학년 말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니까 1938년 2월쯤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일제는 학교 강의를 일본어로 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때까지 오산학교에서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두 명의 일본인 교사를 빼고 일본어로 강의하는 교...

단군과 친일파

이 포스팅은 아래 책을 정리한 것입니다.일제강점기 단군릉수축운동 - 김성환 지음/경인문화사중종 25년(1530)에 나온 에 강동군에 단군묘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군릉이 이것)조선시대 유림들은 이 단군묘에 제사를 지냈는데(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단군을 이단시하거나 홀대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강...

어린이날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다. 그보다 앞서 1922년에 천도교소년회 주관으로 5월 1일에 어린이날 행사를 가진 바 있다. 공식적인 출범이 없었던 것이긴 하나 어린이날의 시작은 1922년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이때 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대회를 열지 못하다가 오후 1시에서야 허가가 나와서 탑골공원에서 광...

광화문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을 헐어버린다는 결정이 나왔다.다행히 광화문은 헐리지 않고 다른 쪽으로 이전되게 되어 목숨을 건졌는데, 이는 한 일본인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일본 동양대[도오요대]의 철학과 교수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그 주인공이다.그는 광화문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문의 편지를 동아일보에 보냈다. 그리고 그 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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